HD현대중공업·삼호·미포: 세계 1위 조선 가문의 3인 3색 세계관 분석
바다 위의 거인들, HD현대그룹 조선 3사의 각기 다른 세계관
우리나라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간판을 참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바다 위로 눈을 돌리면 그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세계 1위 조선 그룹인 HD현대의 품 안에는 개성이 뚜렷한 세 명의 거인, 즉 조선 3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름은 비슷해 보여도 각자 잘하는 전공 분야와 살아온 내력이 제각각인데요. 오늘은 이 거대한 조선 가문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며 우리 조선업의 지형도를 그려보겠습니다.
가문의 중심을 잡는 든든한 맏형, HD현대중공업
가장 먼저 소개할 주인공은 울산에 뿌리를 둔 'HD현대중공업'입니다. 1972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차관을 빌려와 조선소를 세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죠. 가문의 종가답게 규모와 기술력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맏형인 현대중공업은 전공 과목이 아주 다양합니다. 거대한 컨테이너선부터 최첨단 LNG 운반선,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군함(함정)까지 못 만드는 배가 없습니다.
특히 “선박의 심장을 장악하다: 한국 엔진 3사가 주도하는 조선업의 질적 도약” 글에서 다뤘던 '선박의 심장'인 엔진을 직접 만드는 사업부까지 갖추고 있어, 배를 만드는 전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수직 계열화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울산 앞바다를 가득 메운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은 바로 이 맏형의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호남의 자존심이자 기술의 강자, HD현대삼호
두 번째 주인공은 전라남도 영암에 터를 잡은 'HD현대삼호'입니다. 이 회사의 역사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원래는 한라그룹 소속의 '한라중공업'으로 시작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IMF)의 거센 풍랑을 만나 파산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이때 HD현대가 위탁 경영을 맡으며 구원투수로 등판했고, 2002년 정식으로 가문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영남권에 몰려 있는 다른 조선소들과 달리 호남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죠. 현대삼호는 '알짜배기'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만큼 실력이 뛰어납니다.
특히 대형 컨테이너선과 LNG 운반선 건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성을 자랑하며, 그룹 내에서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시련을 딛고 일어나 가문의 핵심 브레인으로 성장한 드라마틱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베테랑, HD현대미포
마지막 주인공은 울산에 형님과 함께 살고 있는 'HD현대미포'입니다. 앞서 소개한 두 형님이 거대한 덩치로 승부한다면, 현대미포는 '중형 선박'이라는 틈새시장의 절대 강자입니다. 1975년 선박 수리와 개조 전문 기업으로 출발해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온 베테랑이죠.
현대미포의 주력 전공은 석유제품 운반선(PC선)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휘발유나 디젤 같은 기름을 실어 나르는 중간 크기의 배들인데, 이 분야에서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베트남 현지에 'HD현대베트남조선'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글로벌 생산 기지 확장에서도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덩치 큰 배들 사이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며 가문의 내실을 다지는 아주 영리한 막내의 모습입니다.
지주회사라는 컨트롤 타워, HD한국조선해양
이렇게 개성 강한 세 형제를 하나로 묶어주는 컨트롤 타워가 바로 'HD한국조선해양'입니다. 직접 배를 만들지는 않지만, 세 회사가 각자의 전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수주 전략을 짜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조선업이 단순히 배를 찍어내는 공장을 넘어, 자율운항 선박이나 수소 추진선 같은 미래 기술 기업으로 나아가는 방향타를 쥐고 있는 셈이죠.
거대한 함대가 질서 정연하게 대양을 향해 나아가듯, HD현대그룹의 조선 3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우리 조선업의 황금기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